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국민의 기억 속에 세월호 사태는 안타까움과 함께 분노로 남아 있다. 침몰하는 배 안에 어린 학생들과 승객들을 남겨 두고 도망친 세월호 선장 때문이다. 결국, 살인 및 살인미수, 수난구조법 위반 등의 이유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그것으로 죗값을 모두 치른 건 아니다. 도덕적 책임과 사회적 지탄을 지울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 후 2년이 지났음에도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세월호 선장을 다시 불러온 사건이 터졌다. 배와 관련이 있지만, 이번에는 육지에서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일가가 법정관리 전 단계인 자율협약 신청하기 나흘 전에 보유 주식 전량을 처분한 사실이 알려졌다. 부실이 눈덩이처럼 쌓이는 가운데 거액의 급여와 배당도 이미 챙기고 나서다.

해운업계가 어려워진 것은 글로벌 경영 환경의 변화를 내다보지 못하고 사업을 확장한 최고경영자의 경영 책임이 크다. 해운업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물류에 대한 지식은 물론 세계 경제, 유가와 금융 등에 대한 동향을 파악해 경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단순히 전임 회장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업을 통솔하게 놔두면 운이 좋아 버틸 수는 있겠지만 끝은 뻔하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도 동부건설에 대한 법정관리 신청 전에 내부 정보를 이용해 보유 차명주식을 대거 처분한 의혹을 받고 있다는 보도가 잇달아 터져 나왔다. 기업인이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의식이 없으면 사회 도처에서 피해를 본다. 자율협약 신청이나 법정관리 사실을 모르고 고가에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들은 직접적인 피해자다. 이런 사실을 알고 매매했다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불법 매각으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설령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 하더라도 회사를 궁지에 몰아넣은 기업인이 돈을 챙겨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도덕성 문제를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 실패로 수많은 사람이 실직 위기에 처했고 그 가족들은 고통받고 있다. 협력업체가 받는 피해는 더 크다. 단가를 낮추라고 후려치고, 직원들은 임금도 못 받고 해고되며, 회사 문을 닫기까지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재정이든 발권력이든 공적자금이 투입되면 결국 뒤처리 비용은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 국민의 분노지수를 높인 책임도 크다. 반기업 정서 조장은 가장 질타받을 일이다. 기업인이 구조조정을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돈만 좋아하는 속물로 전락해 건전한 기업가 정신을 좀먹는다. 산재한 노동 관련 개혁과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조정에도 부정적이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기업인은 우리 사회에 이렇게 많은 상처를 남긴다. 현정은 회장은 2003년 남편인 정몽헌 회장의 자살로 현대상선을 맡았고, 최은영 전 회장은 남편이 사망하면서 한진해운 회장을 맡았다.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고도 수많은 임직원과 협력업체를 책임지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면 경영 승계 프로그램에 분명히 허점이 있다. 세계적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빌 게이츠도 이사회 직책만 맡아 기술과 제품 개발에 조언할 뿐이고, 경영과 관리는 전문 경영인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그리고 경영 능력이 충분히 검증된 인물이 경영을 승계하도록 하고 있다.

이제는 기업인의 자격을 갖춘 인물이 기업을 책임지고 이끌 수 있도록 하는 경영 승계 시스템 구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그리고 대주주가 직접 경영에 참여할 때는 기업을 끝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방안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2015.05.20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5200107391100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