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 1위의 조선(造船) 대국으로 자리매김했던 우리 조선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 특성상 조선업의 경쟁력은 유럽-미국-일본-한국 순으로 이전돼 왔고, 이제는 중국이 조선업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조선업의 산업 주기설을 고려해 예측했을 때 중국이 한국 다음의 조선업 강국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구조조정을 하게 됨으로써 우리 조선업의 피해는 더 커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비록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조선업의 구조조정은 반드시 단행해야 한다. 그리고 조선업의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우리 산업의 전반에 걸쳐 저성장 시대에 대비한 구조조정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고강도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그 결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음에도 세계 시장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행운이 우리에게는 독(毒)이 됐던 것 같다. 우리 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시대에 대비한 구조조정을 계속 시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상대적 우월감에 도취돼 1997년 외환위기 극복 이후 변화와 개혁의 고삐를 풀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외환위기를 극복한 지 20년이 지난 최근 삼성, SK, KT, 두산 등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최근 이뤄지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은 왜곡된 소유 지배 구조를 지닌 일부 대기업의 방만한 투자와 차입경영이 원인이었고,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중복 과잉투자가 심각한 7개 업종에 대한 합병, 재벌 간 사업 교환이 추진됐다. 그 당시 구조조정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방만경영을 한 기업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 우리 기업의 구조조정은 중국의 부상과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한 글로벌 산업의 경쟁 구도 재편에 따른 산업 차원에서의 기업 자체적인 구조조정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1997년 당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우리 기업의 부채비율을 낮춰 내실을 추구하는 한편,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한 재벌 간 사업 교환과 같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했다. 일본과 같은 글로벌 리더를 추격하기 위한 목표가 있었기에 구조조정의 방향이 명확했고 그 속도 또한 상당히 빨랐다. 그러나 최근의 구조조정은 우리 기업이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리를 내주는, 즉 추격당하는 상황에서의 구조조정이기에 규모 면에서는 중국과 경쟁이 안 되고, 차별화 측면에서는 선진국과 경쟁이 안 되는 상황이라 구조조정의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고, 그러다 보니 속도도 내기 어려운 형편이다.

1997년 당시에는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외환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에 우리 기업의 구조조정은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하는 ‘우리’를 위한 구조조정이었다.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해온 우리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아픔에도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이기에 모두가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근 우리 기업의 구조조정은 ‘나’만을 위한 구조조정인 것 같다. 구조조정에 대한 절박함도 없고 ‘우리’보다는 ‘내’가 살아남기 위한 구조조정이기에 이해관계자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실기(失期)를 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구조조정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세계 공급과잉과 경기침체로 인한 2019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예측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은 지금부터라도 제4차 산업혁명과 글로벌 산업 재편에 따른 기업 구조조정을 과감히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글로벌 아시아시대를 대비한 산업 내 한·중·일의 역할을 전문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한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한 구조조정의 경험을 되살려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고 연결되는, ‘우리’ 모두를 위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이번 구조조정에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대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2016.05.12 /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512010330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