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국제유가의 3대 지표 중 서부텍사스유(WTI)와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37달러 안팎으로 떨어졌다. 브렌트유도 40달러를 간신히 넘은 수준이다. 2004년 유가 상승 직전으로 돌아갔다. 2004년부터 시작된 유가 상승 덕분에 2014년 중반까지 한국의 많은 산업이 호황을 구가했다. 원유를 수입하고 가공하는 정유업부터, 정유시설을 건설하는 플랜트업, 원유와 석유 제품을 실어 나르기 위한 배를 건조하는 조선업, 그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후판을 생산하는 철강업 및 그 후방 산업은 모두 고유가를 선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재생에너지인 풍력·조력·태양광 산업 등도 고유가를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유가는 셰일오일과 셰일가스를 추출하는 기술 개발을 촉진했고, 급기야 미국에서부터 셰일오일·셰일가스의 생산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이전까지 알고 있었던 지구상의 원유 매장량을 초월하는 수준의 에너지가 지구 곳곳에 있음을 일깨운 것이었다. 셰일오일·셰일가스의 생산이 유가 하락을 초래하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0년 만에 다시 온 저(低)유가는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를 뿌리째 흔드는 상황이다. 몇몇 산업을 제외하곤 앞에서 언급한 건설·정유·화학·조선·철강 등 전기전자 외의 주력 산업 모두가 저유가에 휘청거리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이런 저유가가 일시적일 것이라는 견해보다는 장기적일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유·화학·조선·철강의 모든 분야에서 구조조정이 절실한 순간이다. 저유가가 장기적이라면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로 보고 대응을 하는 것은 그나마 남아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2010년을 전후해 상당히 많은 투자를 했다. 2010년 제조업 총자산 증가율은 12.01%(중간값)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4.73%나 선진국의 4.60%보다 월등히 많은 투자를 했다. 그러나 이후 제조업 매출증가율은 점차 떨어져 2014년 0.6%(중간값)로 OECD의 3.48%나 선진국의 2.97%보다도 낮은 수준이 됐다. 즉, 투자는 많이 했는데 매출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으니 성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성과를 올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매출을 올리든지 자산을 줄이든지 해야 한다. 하지만 현 상황을 보면 매출을 올리는 건 쉽지 않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제조업이 그 명맥을 유지 하기 위해선 자산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매출 증가를 기대하고 과감한 투자를 했으나 저유가로 인해 발생한 저성장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유휴 자산과 경쟁력이 없는 사업에서 과감하게 철수해야 한다. 그리고 저유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매각 대금으로 고부가가치 사업을 인수해야 할 것이다.

자체 개발로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개발을 한다고 해도 시장에 있는 기존 플레이어와의 경쟁으로 또다시 어려워질 수 있다. 고부가가치 사업을 누가 쉽사리 팔겠는가. 하지만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현재의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 위기는 항상 기회와 함께 온다는 말이 있다. 저유가가 일시적인 것이 아닌 마당에는 저유가에 순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고유가 시절을 잊고 고유가에 호황을 누리던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저유가에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으로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권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도와줄 수 있는 모든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할 것이다.

[2015.12.10/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5121001073111000005